전 자칭 ‘대중예술 오타쿠’이지만 예능은 거의 보지 않는 편이었는데요. 영화, 드라마를 좋아하다 보니 <방구석 1열>은 매주 챙겨보게 되더라고요.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것 치고 손꼽히는 명작 중에 안 본 것도 꽤 많아서 “과연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할수 있나?”하고 자문하곤 했는데, 그 질문에 답하듯 언젠가 봤던 <방구석 1열>에서 “영화는 그저 느끼는 것”이라던 변영주 감독님의 말이 기억에 남아요.

연출 방식, 배우에 대한 분석 등 영화를 감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옳지 않은 것에 대해 옳지 않다고 또렷이 목소리를 내는, 소신 담은 발언들이 좋았습니다.

정말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방구석 1열>을 함께하며

실은 영화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좋아하는 영화가 더 많아졌습니다.

때때로 너무 한쪽에 치우치고

중립적이지않다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

학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민주주의를 이야기할때,

혐오와 차별에 대해 말해야할때,

전 중립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 변영주 감독 인스타그램 (2019)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변영주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 2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이하 낮은 목소리)를 봤습니다. 국내외에 계신 일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는데요. 일본 위안부 문제를 다룬 대부분의 콘텐츠에서 대표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안타까움, 슬픔이었다면, <낮은 목소리>에서는 해방 이후 할머님들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꾸려오셨는지와 낮지만, 분명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강인한 분들이라는 걸 담고 있었어요.

Q.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현 상황을 보면 일본의 태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는 여성들도

때로는 지치는 것 같다.

그분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

…저는 우리가 패배 했다거나,

이게 지치는 싸움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세상이 안 바뀐 걸까?

저는 점차 사회가 가시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아서 되게 기뻐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과 같은 이슈들이

가시화되는 순간부터

세상은 바뀌어진다고 믿는다.

-2019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낮은 목소리> GV 중

매일 아침 혐오범죄와 환경오염 문제로 가득한 뉴스를 볼 때, 주변에서 젠더감수성이 0에 수렴하는 혐오 발언을 할 때마다 기운이 쭉 빠지고 내가 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종종 있었는데요. 이제는 그럴 때마다 '영주적 사고'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요.

그렇게 믿으며 흔들리지 않고 올곧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 변영주 감독님. 세상을 바꾸는데 그 목소리를 더하고 싶고 영화든 GV든 예능이든 앞으로도 더 많이, 자주 뵙고 싶어요 ! (신작도 너무너무 기대중입니다 . . 💗)

여성 문제와 관련해 깊이 있는 시선과 날카로운 메시지를 담은 영화를 제작해온 영화감독 변영주.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어떻게 한 사람의 커리어가 이렇게 줏대 있고 강직할 수 있는지 감탄하게 돼요.

그의 활동을 순서대로 살펴보자면, 먼저 1989년 여성 문제를 다루는 여성영화집단 '바리터'의 창립 멤버로, 촬영 감독을 맡으며 영화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돼요. 사무직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성차별에 대해 다룬 <작은 풀에도 이름 있으니>(1990)와 <우리네 아이들> (1990)의 촬영을 맡았죠. 그 후, 감독으로서 첫 작품인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3)을 발표하는데요, 제주도의 기생관광으로 알려진 매춘 여성들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예요.

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어머니가 위안부인 한 여성을 만나게 되는데요. 5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이들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을 제작해요. 이 영화는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상 최초로 극장에서 개봉되기도 했으며,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오가와 신스케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았어요. 이 후, <낮은 목소리 2>(1997), <낮은 목소리 3: 숨결>(1999)을 잇따라 제작하며 <낮은 목소리> 3부작을 완성하고, 계속해서 사회에 메시지를 던졌죠.

2000년대부터는 상업 극영화를 제작하며, 조금 더 폭 넓은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게 돼요.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호평을 받은 영화 <밀애>(2001), 불안정 속에서도 꿈을 놓치지 않는 청년들을 다룬 영화 <발레 교습소>(2004), 한국 영화 역사에서 가장 임팩트있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낸 영화 <화차>(2012) 등을 연출했죠. 올해에는 MBC 드라마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의 연출을 맡았다는 소식이 들리며, 첫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있어요.

영화 제작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어요. 영화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리뷰 프로그램 <방구석 1열>(2018~2022) 등의 방송 출연으로 대중들에게 익숙한데요. 최근, 유튜브 예능으로 개편된 <돌아온 방구석 1열>(2023~)에도 패널로 출연하며 더 가까이에서 소통하게 됐죠. 또, <영화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다>(2019) 등의 도서를 출간하는 등 다양한 곳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앞으로 또 어떤 작품으로 돌아올지 응원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돼요!

*필모그래피 관련 내용은 '한국영화감독사전' 및 '씨네21'을 참고했습니다.

ⓒ KBS 여성 아카이브 채널 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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