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특집호에서 소개할 좋은 여자 사람은 바로 화가 우향 박래현입니다 ! 근대 한국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여성 예술가인데요. 지난 2020년, 박래현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박래현, 삼중통역자>라는 전시가 열렸고, 저는 이때 박래현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나름 미대생이었는데 . . . 한국 근대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를 탄생 100주년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됐다니 살짝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 그리고 남편인 화가 운보 김기창의 이름은 낯설지 않은 것이 . . 마음이 조금 복잡하더라고요.

1943년, 단장을 하는 하숙집 주인 딸을 그린 사실주의 화풍의 <단장>으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많은 남성 화가를 제치고 특선을 받고 등단합니다. 그리고 1956년, <노점>이라는 작품으로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을 받았는데요. 이때 막내딸이 태어나기도 했다고 해요 . . . 😮 즉, 무려 4명의 자녀를 돌보면서 그린 작품인 거죠. 시장을 오가는 여성들을 그려 일상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 좋았고, 기존의 동양화 화법에서 탈피한 입체주의 기법이 기억에 남았어요. 이렇게 박래현은 동양화뿐만 아니라 추상화, 태피스트리, 판화 등 다양한 화풍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작품 세계를 넓혀갔습니다.

아침 6시쯤 일어나

기저귀 빨기, 밥 짓기, 청소하기,

아침 식사가 끝나면 이것저것 치우고,

닭의 치다꺼리, 아기 보기,

정오면 점심 먹고,

손이 오면 몇 시간 허비하고,

저녁 먹고 곤해서

좀 쉬는 동안에 잠이 들면

자 그러면 본업인 그림은 언제나 그리나.

글쎄, 이런 시대가 올까.

바랄 수 없는 꿈속의 일이겠지만

꿈속에서라도 이런 세상이 온다면

몇 가지 이야기 해보고 싶다.

1. 여성들은 외부에서 활동하게 될 테니

지금까지 해오던 가사를 위탁하고 싶다.

2. 지금까지 여성들에게 불리했던 법정,

법의 개정을 실행하고 싶다.

3. 가정 싸움에는 타인물입이나,

마누라 치기 좋아하는 남성에게는

부인단에서 특별 벌을 주어야겠다.

4. 지금까지 이어져온 남성들의

봉건적 의식을 뿌리 뽑도록

교양을 쌓아주고 싶다.

5. 걸핏하면 "여자라는 것은"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자에게

특별한 법을 제정하고 싶다.

6. 여성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없애기 위해

각 학교에서 재교육을 실행하고 싶다.

하지만 화가이자 아내, 어머니 박래현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김기창과 결혼할 당시, 결혼 후에도 화가로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서약을 했지만 시대 특성상(이라고 하지만 지금도 공공연한) 육아와 가사 노동은 고스란히 여성인 박래현의 몫이었죠. 하지만 낮에는 집안일, 밤에는 틈틈이 작업을 하며 예술가의 삶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1969년에는 49세의 나이에 뉴욕에서 판화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어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유학과 여행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모습이 너무너무 멋지더라고요.

확실히 그녀는 과로했다.

아내, 어머니, 예술가의 '삼중의 삶'은

그의 '삼중통역'과 마찬가지로

너무 버거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삶에

불만은 없었으리라.

누구보다도 내실을 이룬 삶을 살았기에.

박래현은 1976년 1월, 57세라는 이른 나이에 간암으로 타계했습니다. 아내, 어머니 그리고 예술가의 ‘삼중의 삶’의 무게는 엄청나게 무거웠을 것 같아요. 웬만한 슈퍼우먼이 아니고서야 해내기 어려운 것이었겠죠. 무궁무진하게 확장되던 그의 작품 세계가 더 펼쳐지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박래현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살림과 육아의 짐은 잠시 내려놓고 온전히 예술가로서의 삶에만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하고요. 이미 훌륭한 예술가이지만,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자리 잡지 않았을까요? 앞으로 박래현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서 그와 그의 작품들이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2024년, 48년이 지난 지금도 박래현처럼 삼중의 삶을 사는 여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디 그 무게가 그렇게 무겁지 않기를, 세 가지 중 괴롭고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면 혼자 짊어지지 않고 해방될 수 있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직업인으로서 빛나는 모습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요 !